본문 바로가기
일상

비가 축축 쏟아지는 날, Blue한 Blues가 어울리는 날에 수양록

by hotcoding 2022. 10. 9.
반응형
비가 축축 쏟아지는 날, Blue한 Blues가 어울리는 날에 수양록

Image by Dimitris Vetsikas from Pixabay

내가 글을 그만 쓴지는 아무래도 3년 즈음 됐을 것이다. 23살 만으로는 22(언젠가 수십 년 뒤에는 다 만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때 군대에서 상병일 때, 병장이 되기 전까지는 수양록을 썼었다. 정확히는 수양록이 아니라 소나기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소중한 나의 병영 일기의 줄임말로 일기장 한 권을 훈련소에서 줬었다. 그때는 한날 한날 소중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썼었다. 혼자서 연병장조차 맘대로 못 갔던 일이등병 시절 나의 세상은 군대라는 곳으로 한정되어 있었고, 나에게는 그 세상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겨졌었다. 그래서 그때에 작은 마찰이나 충격조차 나에게는 기록하고 개선하기 위해서 애썼었다. 그때 나는 참 성실한 이등병이었다. 마치 잘 설계된 인공지능 모델처럼 나의 병영생활의 곡선은 잘 큰 굴곡 없이 쭉 곡선을 이어갔다. 그때의 나는 참 행복했었다.

 

요즘 나는 내 삶이 행복한가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들이 많다. 예전만큼 삶이 행복하지 않다. 충분히 충동적이고 자극적인 것들로 삶은 넘쳐나지만, 나의 눈동자는 시큰둥하기만 하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가장 행복했던 날은 아마 병장 때, 근무도 없는 휴일 빗소리를 들으며 생활관에서 침낭에 있었을 때이다. 그때 나에겐 뭣 대단하겠냐만 배에 복근도 있었고, 나름 군대 밖에서 나를 기다려줄 희망찬 미래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무척이나 활력이 넘치고 건강했었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게 부사관들은 수양록이라고 부르던 소나기때문이 아닌가 추측이 든다.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

그래서 나는 다시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그때 마침 하늘에서는 쏟아질 듯하다가도 보도블록만 적신 우중충한 Blue sky였다. 나는 한글날이 가까이 왔음에도 난 역시, 내 문학의 뿌리는 역시 영어인 거 같다. 박재열 교수님이 나의 첫 스승님이었다. 그동안 문학을 뒤안길에 묻어둔 채 잠시 샛길로 센 시간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가는 방향, 나의 벡터는 일정하기만 하다.

오늘은 만 25세 청년답게 컴퓨터활용능력 1실기 시험을 보러 대구상공회의소로 갔다. 분석문제 중에 통합이라는 게 나와서 그게 나의 발목을 잡았다. 22년 기출 문제에는 수록되지 않은 것이어서 나는 중도 퇴실하고 시험장을 나왔다. 애매하게 준비해서는 자격증을 안 주려고 상공회의소에서 작정을 한 것 같았다. 가는 길에 전동 키보드가 불량이어서 무릎까지 까졌는데, 참 재수도 없는 날이다.

이런 날에 감정을 다스리려고 감성카페에서 사진을 찍고 포스팅을 구상한다. 문학과는 멀어진 나의 삶에 대해서 풀어나갈 얘기들이 참 많다. 오늘은 그 첫 장이다.

반응형